[도전과나눔 제 52회 기업가정신 포럼] 잃어버린 30년, 일본 경제의 부활은 가능하나?
본문
한때 화려했던 세계경제 대국 2위 일본의 몰락...그 원인은?
미국과의 패권 전쟁에서 백기 든 일본 통해 사회에 만연한 기조 읽을 수 있어
일본 기업과의 제휴로 세계 누비는 풀무원처럼 일본서 비즈니스 기회 발굴해야
[K글로벌타임스] 1989년까지만 해도 세계 시가총액 상위 20개사에 일본 기업은 1위를 기록한 NTT를 비롯해 14개사가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2017년 일본 기업은 단 1개사도 순위에 오르지 못했다. 1년 사이에 ‘경제 대국’이라는 타이틀을 잃어버린 것이다.
1989년과 2017년 세계 시가총액 상위 20개사 리스트 [사진=애들레이드]
도전과나눔 이금룡 이사장은 “우리가 과거 벤치마킹했던 일본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이며, 우리나라는 일본을 따라야 하는지 일본과 다른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라며 설감 기업가정신 특강에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김현철 원장을 ‘제52회 도전과나눔 설감 기업가정신 포럼’ 강단에 오르게 한 이유를 밝혔다.
이번 포럼은 ‘한·중·일 새로운 국제 질서의 시험대에 서다’라는 주제로 개최되었으며,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김현철 원장은 ‘일본’에 대한 인사이트를,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정영록 교수는 ‘중국’에 대한 인사이트를 강연했다.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김현철 원장 [사진=도전과나눔]
1991년 일본 유학길에 오른 김 원장은 일본 경제가 무너지는 현실을 몸소 체감했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세계경제 2위 국가가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지는가?’ 그 결정적 이유로 그는 미국과 일본 사이의 패권 전쟁을 꼽는다.
패권 전쟁 끝에 1년 만에 화폐 가치 절반 넘게 하락
국가의 화폐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큰 역할을 한다. 화폐로 인해 경제에 호황기가 올 수도 있고, 침체기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패망하기도 한다. 김 원장은 “당시 미국과 일본 사이에 패권 전쟁이 일어나고 있었다. 일본이 미국 경제의 70%를 따라잡았기 때문이다”며 “정확하게는 화폐 전쟁이 일어났다”고 덧붙였다.
미국은 일본을 환율로써 경제를 무너뜨렸다. 1달러에 250엔 정도 하던 환율이 1년여 만에 1달러에 120엔으로 낮아졌는데, 이는 일본 기업이 더 이상 미국으로 수출하지 말라는 무언의 조치였다.
문제는 이런 강압적인 분위기에도 일본은 이를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일본 사회의 기조가 깃들어 있다. 일본은 ‘패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사무라이 정신으로 볼 때 승부에서 패했을 경우, 상대에게 보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태평양 전쟁도 패전이라는 말 대신 종전이라는 말을 쓰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패전이라는 말을 사용하게 되면 책임자가 반드시 그 책임을 져야 한다. 당시 책임자는 당연하게도 일본의 고위층이었다. 하지만 종전이라고 하면 책임자는 없어도 된다. 즉, 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세습 정치와 독재 정당이 낳은 일본의 사회구조
도전과나눔이 주최하는 '설감 기업가정신 포럼'에서 강연 중인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김현철 원장
[사진=K글로벌타임스]
김 원장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 사이에 15명 정도의 총리가 있었다. 그중 12명이 세습 총리로, 대부분 전범이다”라며 “그러니 일본 정치가들이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패전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미국이 전쟁 당시 일본의 전범을 풀어주면서 일본 정치인을 포함한 고위층은 미국을 ‘은혜의 나라’라고 여기게 되었다. 복수의 대상이 아니라 숭배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렇기에 미국과의 말도 안 되는 화폐 전쟁에도 일본은 단 한 번의 반발 없이 수긍하게 됐다.
우리나라 속담 중에 유명한 구절이 있다. ‘고인 물은 썩는다’다. 세습 정치의 일본이 적절한 예시다. 미국은 패권 전쟁 뒤에도 일본에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했지만, 일본은 이를 모두 수용했다. 심지어 미국 기업의 일본 진출을 위해 토지 정책까지 바꿨을 정도였다. 이처럼 미국의 내정 간섭에 일본은 망가질 수밖에 없었고, 이는 만연한 풍토가 되었다.
물론 일본이 미국 때문에 경제 침체기가 온 것은 아니다. 결정적 원인은 잘못된 경제 정책이었다. 이로 인해 버블이 발생했고, 이를 연착륙시키지 못하고 경착륙시켰다. 전쟁의 책임자가 없었던 듯, 경제의 책임자 역시 아무도 없었다. 이는 일본 경제를 땅 밑으로 끌어내리는 요인이 됐다.
일본, 아시아 맹수로 부활하기 위한 움직임
일본 특유의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에 일본 국민들이 반발하고 일어선 사건이 있었다. 20년간 일본 경제가 도저히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이에 대한 책임자가 없으니 책임을 물은 것이다. 그 결과 2009년 정권 교체가 일어났다. 자민당은 54년 만의 독재를 끝내고 민주당이 처음으로 정권의 주도권을 잡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다. 생전 처음 정권을 잡은 민주당이 일본 사회를 이끌어가는 데 미숙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3년 만에 다시 자민당이 정권에 복귀했다. 그와 함께 자신을 대체할 정당이 없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악순환의 반복이 일어나면서, 불나방이 불에 뛰어든 상황이 완벽히 갖춰졌다.
2010년 일본은 중국에게 경제 대국 2위 타이틀을 넘겨준다. 일본인들에게 있어 이는 치욕과도 다름없었다. 또한 중국 어선이 일본 해안을 침범하면서 중국 어선 선장을 체포했는데, 중국은 그의 석방을 요구했다. 일본은 이를 거절했다. 그러자 중국의 보복이 시작됐다. 희토류 수출을 금지한 것. 그로 인해 일본 산업의 지각이 거대하게 흔들렸고, 결국 중국인 선장을 석방했다.
여기에 우리나라와의 독도 분쟁이 커지면서 일본의 반한 감정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됐다. 그간 한국과 일본은 정치와 경제를 함께 두지 않은 채 서로 분리한 상태로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왔다. 즉, 일본이 정치 문제를 가지고 경제를 뒤흔드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180도 전환된다. 2012년 인도‧태평양 전략을 펼치면서 한국의 모든 상황에 개입하기 위한 밑바탕을 깔았다.
부자는 망해도 3대가 간다...일본도 망하지는 않을 것
그렇다면 일본은 왜 인도‧태평양 전략으로 한국에 개입하려는 것일까. 김 원장은 “일본은 아시아의 맹주로 부활하려고 한다. 그간 일본은 기업 성장 위주의 경제 정책을 펼쳤다. 그로 인해 일본 서민들은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그 결과 디플레이션이 일어났다”며 “자민당은 최근 처음으로 임금 위주의 성장 전략을 택했지만, 시기가 너무 늦었다. 정치인 테러가 연속해서 일어나는 원인이 여기에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보수 우익들은 이 전략을 통해 한국, 나아가 대만을 정치‧경제적 혼란 상황을 겪게 하고, 일본은 이를 통해 한국전쟁 때와 같은 이득을 얻는다. 물론 일본은 이렇게 하지 않아도 경제 대국 3위인 만큼 쉽게 무너지지 않을 터다.
일본 1965~2010년까지의 연평균 GDP 추이 [사진=일본은행]
하지만 김 원장의 말에 따르면 30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0.7%다. 낙수 효과를 기대하며 기업 위주의 경제 성장 전략을 펼친 결과 기업은 살 만하지만, 서민들은 그렇지 못하는 구조가 되었다. 이로 인한 일본 서민들의 불만이 점차 쌓여 폭발 직전의 활화산이 된 것이다.
김 원장은 “일본은 망하지 않을 것이다. 부자는 망해도 3대가 먹고산다는 말이 있다. 그 말에 따르면 일본은 앞으로 60년간 침몰하지 않겠지만, 더 이상의 부활도 없다”라며 “기업가들은 일본을 과거와 다른 눈으로 봐야 한다. 그를 통해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 특히 지금까지 살아남은 일본 기업은 두 부류로 나뉜다. 정말 강한 기업과 좀비 기업이다. 강한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일본진출을 모색해야 한다”고 전했다.
풀무원이 제조 및 판매하고 있는 나또 [사진=풀무원]
마지막으로 김 원장은 풀무원을 예시로 들었다. 풀무원은 일본의 나또 전문 기업과 기술 제휴를 통해 나또 제조 기술을 흡수했다. 그리고 나또를 한국에 출시해 큰 호응을 얻었다. 또한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두부 제조 기업과 손잡고 두부 제조 노하우를 배운 후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 미국 등으로 수출하고 있다.
“앞으로 엔화는 약세가 되는 반면 원화는 강세가 될 것이다. 현재 후계자가 없어 존폐의 위기에 빠진 일본의 살아남은 기업들이 많다. 이들과 제휴를 맺거나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술 노하우를 우리 것으로 만든다면, 이는 무궁무진한 비즈니스 기회가 될 것이다.”
[K글로벌타임스 강초희 기자] aftero_who@kglobal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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