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 Times] 국가R&D 성공률 100%? 기획된 성공에는 혁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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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도전과나눔 제54회 기업가정신 포럼 패널 토론 ②
노준용 소장이 말하는 카이스트 실패연구소 2년의 배움
‘괴짜교수’로 유명한 이광형 KAIST 총장은 취임 첫해인 2021년 휴학기간 제한을 폐지했다. 마음껏 여러 도전을 하고 방황하다가 60살이 넘어도 복학해서 졸업장을 받을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이 총장은 이듬해 입학하는 신입생들에게는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꿈을 찾는 것”이라며 “가슴 떨리는 꿈을 찾은 사람은 학교를 떠나도 좋다”고도 말했다.
그런 이광형 총장이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 중의 하나가 ‘실패연구소’ 설립이었다. 이 총장은 세계적인 그래픽 사이언티스트인 노준용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를 실패연구소장으로 임명했다.
‘우리는 왜 도전하는가?’라는 주제로 6월 14일 열린 사단법인 도전과나눔 제54회 기업가정신포럼에 토론 패널로 참가한 노준용 소장은 임명 당시를 떠올리며 “거절에 실패해서 이 자리에 서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서 노 소장은 ‘혁신이 필요한 시대, 실패를 잘 알아야 더 큰 성공을 할 수 있다’는데 실패연구소의 설립 취지가 있다며 2년 동안 연구소를 운영하며 알게 된 내용을 공유하겠다고 말했다.
실패에서 배우려면…중요한 것은 리더
‘실패’의 정의를 “목표했던 일을 달성하지 못한 상태(a situation or occurrence in which something does not work as it should)”라고 한다면, 실패하지 않고 성공할 수 있는 쉬운 방법이 딱 떠오른다고 노준용 교수는 언급했다. 바로 목표치를 낮추는 것이다.
‘이게 뭐야, 누가 그렇게 하겠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 이런 일이 대한민국의 국가R&D사업에서 벌어지고 있다. 매년 성공률이 거의 100%에 가깝게 99% 이상 성공하는 것으로 나오고 있는 것이다.
노준용 교수는 “물론 연구자들이 열심히 해서 성공한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R&D가 이렇게 성공한다는 이야기는 어쩌면 처음부터 목표치를 낮추고 성공을 기획한 것 아닐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며 “혁신이 사라졌다는 걸 알 수가 있다”고 지적했다.
‘목표치를 아주 높게 잡고 이 높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을 추구하면 필연적으로 단어의 정의에 의해 실패 확률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경쟁상황에서 목표치를 얻을 기회(올림픽 종목별 메달 3개 등)는 극히 한정돼있기 때문이다.
경쟁 상황을 빼도 마찬가지다. 어떤 과업을 할 때 아무리 완벽하게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미처 고려하지 못한 현실과 시나리오가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이를 우주 비행사 프랭크 보먼은 ‘상상력의 실패’라고 표현했다.
어차피 살아가는 과정에서 실패라는게 필연적으로 일어난다면, 생각해야 될 부분은 ‘실패로부터 무엇을 어떻게 배울 것이냐’다. 이와 관련해 일본 실패학의 창시자 하타무라 요타로 도쿄대 교수는 “조직이 실패를 통해 배우려면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실패 스펙트럼 속 안정감과 목표의 조율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의 에이미 에드먼슨 종신교수는 ‘실패 원인의 스펙트럼’을 분석한 결과, 고의적 일탈로 인한 비난받을 만한 실패부터 탐색적 테스트에 의한 칭찬받을 만한 실패까지 다양한 실패의 스펙트럼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고 밝혔다.
스펙트럼의 중간에는 가치중립적인 불가피한 실패들도 있다. 복잡성, 가변성, 불확실성 등 익숙한 상황에 부과된 새로운 요소, 즉 ‘상상의 실패’ 때문에 일어나는 실패들이다. 노준용 교수는 “집중해야 될 부분은 ‘예방 가능한 실패’에 있다”고 강조했다.
어떤 사람이 업무 시간에 졸아서 큰 사고가 났다면, 과연 그 사람을 비난해야 될까. 알고 봤더니 업무가 너무 과중해서 3일 동안 잠을 한숨도 못 자서 과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순간에 졸 수밖에 없었다면 개인을 비난하기보다 시스템 자체를 점검해야 한다는 말이다.
문샷 프로젝트 리더이자 구글의 비밀연구조직으로 알려진 X의 아스트로 텔러 CEO는 실패를 받아들이는 관점의 전환을 말했다.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무엇이 아니라 도전 과정에 생겨나는 당연한 결과로 ‘실패’를 보는 것이다.
실패의 공유와 공개적 토론을 통해 빠른 학습과 지속적 혁신이 가능해지는 반면 실패를 터부시하면 모든 구성원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실패를 숨기게 된다. 업무와 관련해 어떤 의견을 제기해도 벌을 받거나 보복 당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 ‘심리적 안정감’ 속에서 실패에 대한 자유롭고 공개적인 토론을 통해 혁신하는 조직을 만들 수 있다고 텔러는 말했다.
중요한 것은, 실패의 용인이 낮은 성과 기준을 뜻하는 건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높은 심리적 안정감과 낮은 업무수행 기준이 결합하면 안주하는 조직이 되고 안정감과 업무 수행 기준이 모두 낮으면 무관심한 조직이 된다.
또한 심리적 안정감은 없이 업무 수행 기준만 높여버리면 두려움이 만연한 조직이 된다. 심리적 안정감은 높이되 업무 수행 기준도 함께 높여서 학습을 통해 성과를 만드는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 버텨야 성공
노스웨스턴 대학의 다순 왕 교수는 ‘오늘의 실패가 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라는 질문의 답을 빅데이터에서 찾아봤다. 분석 대상은 교수 임용 초반 연구비 펀딩에 성공한 교수와 실패한 교수 그룹의 10년 후 연구성과 비교였다.
두 연구 그룹이 논문 편수는 비슷하게 냈는데 연구비 펀딩을 못 받고 어려운 상황에서 시작한 그룹이 인용 지수도 높고 임팩트 팩터도 높은 훨씬 더 좋은 퀄리티의 연구 결과들을 많이 발표했다는 결과를 얻었다. 즉 더 좋은 연구자로 성공을 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결과에는 슬픈 비밀이 하나 숨어있다고 노 소장은 지적했다. 초기에 펀딩에 실패한 그룹의 12%가 아예 학계를 떠났다는 것이다. 실패했음에도 버티고 남아있던 교수들이 더 우수한 논문을 쓸 수 있었다는 말이다.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의 “많은 인생의 실패자들은 포기할 때 자신의 성공이 얼마나 가까이에 있었는지 모른다”는 명언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우주탐사기업 스페이스X의 도전을 다룬 책 『리프트오프』(에릭 버거)를 보면, 우주선 기체가 워낙 고가이다보니 보통의 우주선 개발 기술자들은 몇 년 동안 문서작업과 시뮬레이션 실험만 하고 하드웨어를 거의 보지 못한다.
반면 스페이스X는 ‘이런 식으로는 빠른 시간 안에 우주선을 만들 수 없다’고 판단, 일단 쏘고 실패하면 부수고 다시 만드는 식으로 연구를 진행해 3번의 실패 끝에 4번째 성공을 거뒀다.
노준용 소장은 “원대한 목표를 가지고 도전을 하는데, 성공하는 과정에서 실패는 있을 수밖에 없지만 실패를 반복할수록 실패 강도는 점점 낮아지게 되고 간격도 좁아진다”며 “실패를 통해 빠르게 배움으로써 궁극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말로 발언을 마무리했다.
김경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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